세현이가 안아주는 느낌, 피부의 감촉, 냄새가 갑자기 생각났다.
어제와 오늘이 무료했다.
특히 오늘이 많이 아주 많이 무료했다.
지루한 느낌이라기 보다 뭘 해야할지를 몰랐는데, 사실 정답은 구직활동으로 정해져 있는 것을 억지로 인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억지로, 아주 억지로 난 오늘 하루쯤은, 이런 상태로 재활용 봉투에 음식물 쓰레기 넣듯 오늘 하루를 보냈다.
속옷은 꼭 필요했다. 하지만 돈이 별로 없어서 속옷을 사면 거의 바닥나는 수준이었는데,
그래도 마지막 양심상 세일에 세일을 하는 곳을 찾아가 80%정도 마음에 드는 속옷을 사고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이즈의 문제였다.-
허영의 귀신에 눈이 씌웠는지 옷도 몇벌 샀다.
하지만 날 좀 불쌍하게 여겨줘. 한벌은 1,000원, 다른 한벌은 3,000원. 마지막 옷은 29,000원 이었다. 과소비였을까.
그래도 기분이 너무 좋아서 허무한 마음을 조금은 달랠 수 있을 정도였다.
집에 와서도 보고싶은 tv프로그램도 없고, 책도 없고, 영화도 없고.
이게 바로 내가 지금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증거였겠지 싶다.
너무 바쁘고 해야할 일이 많을 때는 보고싶은 tv프로그램도, 책도, 만화도, 영화도 넘쳐나니까.
그래도 오늘 하루쯤은, 하는 마음으로
세현이가 없는데도 처음으로 와인을 한병 사서 영화를 한편 시청했는데
오늘 내가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리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기분을 선사했기 때문에 (심지어 영화는 끝나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 기분이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아~~~주 좋다.
술에 좀 취한 탓도 있겠거니.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지금까지 든 생각은
-아, 이거 세현이가 참 좋아하겠다.
-이거 세현이랑 같이 봤으면 더 좋았겠다.
-내가 한번 더 보더라도 이거 나중에 세현이랑 한번 더 봐야겠다.
였고, 장면 별로 들었던 내 마음을 종이에 메모해뒀다.
그 메모에 따르면,
오늘 먹은 국의 간부터 시작해서 이웃집 사촌의 목소리까지 아주 세세한 대화를 자주 나눌 것.
역사와 정치에 대해 아주 많이 공부할 것.
-오늘은 내가 유관순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예전과는 다른 관점이 생긴 날이다만 오글오글
내 미래에 대해 적극적으로 그것보다 중요하게 주도적으로 살아갈 것.
영어공부를 할것.
-내가 지금 동대문에 가서 2백만원을 버는 것과, 앞으로 살아갈 직종과 관련된 일을 하며 150만원을 버는 것에 대한
차이점을 고민했다. 후자가 좀 더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 가족. 눈물이 나는 우리 가족은 점점 깊어지고,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난 진짜. 후회할거다.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알면서도 후회하고 또 후회할 것이다.
엄마. 아빠. 영진이. 할머니. 삼촌. 삼촌보다도 어머니. 아버님 그리고 할머님 할아버님. 우리 도령닝
삼춘은 그냥 깍두기 끼셈. 어디 껴도 상관없음. (우리 삼춘 만세)
난 진짜. 가족을 위해 살꺼다.
내새끼가 태어나면 난 내새끼겠지만, 그래도 난. 그게 무엇이든. 가족을 위해 살기로 했다.
내가족 세현이, 그리고 태어날 우리 귀염이들, 그리고 나와 세현이의 가족들.
가족들을 위한 인생을 살거라고 마음먹었지만 지금은 너 니인생 위주로 살고 있지 않니?
이렇게 자기반성도 거스르지 않는다 나는, 참.
그리고 친구들 이전에 천은정 선생님.
나는 그사람을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생각했을 시에 참 못된사람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손재주.
옛날보다 다르게 다가온다. 내 손재주가.
미술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쏙 든 것은 오늘 하루다.
화이팅! 힘내자!
그리고 운동. 은 말할 것이 없고.
그리고 사랑.
은 세현이겠지.
